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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여곡절 땅 구입기와 내 집 만나기
연상이
2015. 9. 9. 08:28
우여곡절 땅 구입기와 내 집 만나기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 건축가와 집을 짓겠다니! 흔하지 않은 결정을 하게 된 평범한 건축주와 그의 집을 설계할 일본 건축가, 그리고 제대로 된 집을 지어줄 시공자가 각자의 입을 통해 앞으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한다. 그들의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집짓기 중 가장 큰 고비! 적합한 땅 찾기
세상사 모두 인연 아닌 것이 있겠냐만은, 땅을 구하러 다녀보면 내게 적합한 땅은 이미 다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전에 나는 '투자가치'를 배제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땅, 평생 살 집을 얹을 곳으로 향린동산을 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정하고 그 땅이 내게 오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짧게 기술코자 한다.
마음은 정했으나 그것을 가질 돈이 없었다. 하여 욕심을 내되 집착하지 않고 땅을 보는 것 그 자체를 즐기자고 다독였다. 먼저 향린공영회를 찾아가 추천하는 부동산 4군데를 소개받았다. 또한 인터넷 상에 향린동산의 토지를 취급하는 모든 부동산에 연락했다. 10군데 정도가 향린동산을 주력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분들과 소통하며 100평보다 약간 큰 매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01 땅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것
02 향린동산에는 입회비가 상당하다는 것
03 저렴하지만 기초공사 비용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04 내가 찾는 작은 땅은 향린에서 정말 희박하다는 것
부동산 불황기였을 뿐만 아니라 향린의 여러 제약들로 인해 생각한 것처럼 땅이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 그냥 둘러보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위치를 선정하면 그만이다. 자연적 입지가 좋은 만큼 기초공사 비용이 많이 드는 땅이라 할지라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럴 처지는 아니다. 정말로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가장 값이 싸면서도 마음에도 드는 땅을 골라야 했다. 땅을 얼마나 봤으면 나중에는 부동산보다도 더향린을 잘 아는 지경이 되었다. 지번만 들어도 어떤 땅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무엇보다 땅을 보러 향린을 갈 때마다 향린동산이 선사하는 자연환경이 나를 매료시켰다. 금강경에 나오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다)'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많이 일었을 것이다.
돈은 없었지만 부동산에 수시로 연락하며 조건에 맞는 매물을 조사했다. 10군데 부동산을 통해서 4년 정도 조사해 보니 대략 내가 어떤 땅을 골라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파악되기 시작했다. 향린동산 전체를 봤을 때 내가 가장 끌리는 지역은 3~4부 능선 즈음이었다. 그곳 서편에서 남동향의 뷰가 가장 좋았고, 그 다음이 중앙에서 남향의 뷰, 마지막으로 동편에서 남서향의 뷰가 괜찮았다. 1~2부에 자리한 택지들은 아늑한 반면 좀 답답한 면이 있었고 5부 이상의 집터들은 전망이 아주 좋았으나 기초공사비가 많이 들고 조금 외딴 느낌이 들어 아내가 싫어했다. 3~4부 능선에 있으면서 면적도 작고 최대한 평지에 가까운 땅을 찾는 게 중요했다. 시세는 대략 평당 250만원 선이었고, 평당 200만원 짜리 땅도 가끔씩 나왔으나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땅이 나오더라도 집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비를 포함하면 대략 평당 300만원 정도는 땅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땅을 소개해주었으나 그 당시는 그것을 가질 돈이 없었기에 더 이상의 가격협상은 힘들었다(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4년 정도 기다린 끝에 땅을 살 만한 기초자금이 모였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그 사이 부동산 경기가 풀리면서 향린의 땅값도 바닥을 찍고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냥 여유를 가질 수는 없고 어느 선에서 적절한 땅이 나오면 바로 구매해야 했다. 그러던 찰나, 잘 알고 있는 부동산에서 정말 가격적 가치가 있는 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250평의 땅을 3억원 초반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을 보니 조그만 빌라가 앞을 막고 있지만 면적이 커서 충분한조망권이 확보되었다. 위치도 나쁘지 않았기에 이런 땅은 반드시 사야 했다. 마침 건축가인 나오이 씨도 다른 일로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어 이 땅을 먼저 보았다. 아주 좋아했다. 시공사인 홈포인트코리아의 유혁민 대표의 말로는 건축가들이 보면 흥분할 만한 땅이라고 했다. 미련 없이 부동산에 계약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쪽에서 갑자기 가격을 2억원 이상이나 올려버렸다. 좀 김이 빠지지만 향린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로 돈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초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땅을 팔고자 하지 않을 뿐더러 한 번씩 급하게 돈이 쓸 일이 있을 때 내놓다가 그것이 해결되면 가격을 올려버리는 식이다. 조금 저렴하게 나왔다 싶은 땅이 있어 연락을 하면 그중 태반이 이렇게 가격을 올려버리는 물건들이다. 익히 경험해 온 터라 애써 아쉬움을 달랬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향린과 인연이 있다면 적합한 땅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다.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근 4년 동안 매일 새벽에 정갈한 마음으로 발원(發願)했던 터였다. 뭔가를 그렇게 발원해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확신 같은 것이 생긴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다림은 결국 응답을 받았다. 3부 능선에 위치한 평지에 가까운 땅 150평을 3억대의 가격으로 구했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땅이라 더 인연처럼 느껴졌다. 마치 아이를 가지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하다 탄생의 기쁨을 맛본 부모의 마음에 비견할 만했다. 땅이 우리 품으로 오던 날, 울컥할 정도로 감격했다. 이렇게 찾은 땅이기에 나는 이 땅이 우리의 집을 얹을 더 없이 합당한 곳이라 믿는다. 쉽게 구했더라면 이런 느낌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우리 땅도 물론 흠이 있기는 하다. 지적도상으로는 직사각형인데 일부가 깎여 있다. 일반적으로는 축대를 쌓고 땅을 최대한 찾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가 지내고 관리하기에 충분한 마당 공간이 나오고, 안전상에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원래 가진 지형을 최대한 살리기로 한 것이다. 서로 못난 부분을 미워하기보다 가꿔가면서 조화를 이루며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 가족이 살게 될 집
자! 그럼 이제 우리가 평생 살려고 짓는 향린동산의 주택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사실 좀 자연적인 집을 원했다.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나오이건축설계사무소의노리코(Noriko Naoi) 씨가 말했던 'Rustic Modern(소박하고 시골적인 모던함)'이 내가 원하는 취향이다. 참 모순적인 취향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내 삶은 늘 이렇게 이율배반적이고 아이러니한 것들의 조화다. 나는 이상적 현실주의자며, 목표지향적이나 인간적인 부분에 더 끌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정한 산골 같으면서도 도시와 접해 있어야 한다는 땅의 조건 또한 무척 아이러니한 것이 아니던가? 내가 원했던 집도 이런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내 취향에 맞는 건축가와 시공사를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프로방스의 따뜻함'을 기초로 목재의 느낌은 살리되 프로방스의 곡선미는 배제시키고, 지붕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금속재질이어야 했다. 내 취향은 아주 뚜렷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업체가 시공한 기존의 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원했기에 내가 많이 공부하고 시공사에 주문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실용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아내는 살기 편하고, 깔끔하고, 관리가 편한 그런 집을 원했다. 그러던 차에 유혁민 대표가 소개해준 곳이 나오이건축설계사무소이다. 당시 나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일본에서도 꽤 알아주는, 소위 '잘나가는' 설계사무소로, 건축 문외한인 내가 본 그들의 작품은 정갈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으며, 빛의 처리에 능수능란했다. 적어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 단지 취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그들이 설계한 기존의 주택들에서 인간적 느낌, 소박함, 세월의 흔적 같은 것들이 나무 내장재들로 표현되었으면 했다.
나오이 씨와의 첫 미팅 때, 나는 장장 4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준비했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문했다. '자연, 야외, 아웃도어, 명상, 독서, 집필, 수납, 독립적 공간'이 나의 주된 요구사항이었다. 주문을 하면서도 '너무 심하게 내 주장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일 정도였다. 함께 미팅에 참가했던 유 대표도 일단 큰 원칙만 정하고 믿고 맡겨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케이크 상자 같은 곳에 우리 집의 모형을 담아왔다. 나는 빨리 상자를 열고 싶었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상자를 열었을 때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썩 괜찮다'는 것이다. 그때의 느낌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간결하다. 선 하나하나의 처리가 인상적이다. 특히 우리 집 모형의 동쪽 뷰를 보면 문외한이 봐도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구조목의 배치가 산만하지 않다. 구조들이 딱 열과 호를 맞추어 정렬되면서도 공간배치가 이뤄지고 있다. 볼 곳과 가릴 곳이 확실하다. 오픈할 곳은 통으로 오픈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많은 책과 아웃도어 장비, 집안 살림, 정원 관리용품을 수납할 공간이 부족한 점은 초기 내 주문들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이는 건축면적의 제약 때문인 것으로 이해했고, 우리가 쓰지 않는 물품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독서, 집필,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상당히 좁았다. 4년 동안 이 공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협소한 공간이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2층 본채와 테라스를 공유하면서 독자적으로 떨어진 하나의 공간을 원했지만 면적의 제한, 집은 곧 가족 간의 조화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 그나마 이 공간 앞에 제일 넓은 테라스를 마련해 준 점 등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주방과 거실의 경우, 각 공간의 완전한 분리 대신 통합으로 갔다. 우리가 처음 주문한 것은 상호간의 공간적 분리를 통해 독자성을 보장해주되, 원목 통창을 중간에 배치하여 시각적인 연결성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오이 씨가 제안한 것은 거실과 주방이합쳐지는 것으로, 덕분에 공간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일본 건축가와의 작업은 큰 모험이다. 목조주택 문화가 우리보다 발달한 환경에서 실제 그곳에서 살고 있는 건축가의 작품이라 큰 기대가 있는 반면, 의사소통이나 결정에 걸리는 시간적 지연 같은 제약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곳의 자재실정과 국내의 그것이 다른 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 홈포인트코리아, 그리고 나오이건축설계사무소 모두 서로 대화가 통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은 건축주, 건축가, 시공사 모두의 작품이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이 일방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서로 경청하고 자기 색깔을 내되 함께 조화를 이룬다면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복사, 배포는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집짓기 중 가장 큰 고비! 적합한 땅 찾기
세상사 모두 인연 아닌 것이 있겠냐만은, 땅을 구하러 다녀보면 내게 적합한 땅은 이미 다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전에 나는 '투자가치'를 배제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땅, 평생 살 집을 얹을 곳으로 향린동산을 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정하고 그 땅이 내게 오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짧게 기술코자 한다.
마음은 정했으나 그것을 가질 돈이 없었다. 하여 욕심을 내되 집착하지 않고 땅을 보는 것 그 자체를 즐기자고 다독였다. 먼저 향린공영회를 찾아가 추천하는 부동산 4군데를 소개받았다. 또한 인터넷 상에 향린동산의 토지를 취급하는 모든 부동산에 연락했다. 10군데 정도가 향린동산을 주력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분들과 소통하며 100평보다 약간 큰 매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01 땅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것
02 향린동산에는 입회비가 상당하다는 것
03 저렴하지만 기초공사 비용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04 내가 찾는 작은 땅은 향린에서 정말 희박하다는 것
부동산 불황기였을 뿐만 아니라 향린의 여러 제약들로 인해 생각한 것처럼 땅이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 그냥 둘러보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위치를 선정하면 그만이다. 자연적 입지가 좋은 만큼 기초공사 비용이 많이 드는 땅이라 할지라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럴 처지는 아니다. 정말로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가장 값이 싸면서도 마음에도 드는 땅을 골라야 했다. 땅을 얼마나 봤으면 나중에는 부동산보다도 더향린을 잘 아는 지경이 되었다. 지번만 들어도 어떤 땅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무엇보다 땅을 보러 향린을 갈 때마다 향린동산이 선사하는 자연환경이 나를 매료시켰다. 금강경에 나오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다)'의 마음이 아니었다면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많이 일었을 것이다.
돈은 없었지만 부동산에 수시로 연락하며 조건에 맞는 매물을 조사했다. 10군데 부동산을 통해서 4년 정도 조사해 보니 대략 내가 어떤 땅을 골라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파악되기 시작했다. 향린동산 전체를 봤을 때 내가 가장 끌리는 지역은 3~4부 능선 즈음이었다. 그곳 서편에서 남동향의 뷰가 가장 좋았고, 그 다음이 중앙에서 남향의 뷰, 마지막으로 동편에서 남서향의 뷰가 괜찮았다. 1~2부에 자리한 택지들은 아늑한 반면 좀 답답한 면이 있었고 5부 이상의 집터들은 전망이 아주 좋았으나 기초공사비가 많이 들고 조금 외딴 느낌이 들어 아내가 싫어했다. 3~4부 능선에 있으면서 면적도 작고 최대한 평지에 가까운 땅을 찾는 게 중요했다. 시세는 대략 평당 250만원 선이었고, 평당 200만원 짜리 땅도 가끔씩 나왔으나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땅이 나오더라도 집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비를 포함하면 대략 평당 300만원 정도는 땅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땅을 소개해주었으나 그 당시는 그것을 가질 돈이 없었기에 더 이상의 가격협상은 힘들었다(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4년 정도 기다린 끝에 땅을 살 만한 기초자금이 모였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그 사이 부동산 경기가 풀리면서 향린의 땅값도 바닥을 찍고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냥 여유를 가질 수는 없고 어느 선에서 적절한 땅이 나오면 바로 구매해야 했다. 그러던 찰나, 잘 알고 있는 부동산에서 정말 가격적 가치가 있는 땅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250평의 땅을 3억원 초반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을 보니 조그만 빌라가 앞을 막고 있지만 면적이 커서 충분한조망권이 확보되었다. 위치도 나쁘지 않았기에 이런 땅은 반드시 사야 했다. 마침 건축가인 나오이 씨도 다른 일로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어 이 땅을 먼저 보았다. 아주 좋아했다. 시공사인 홈포인트코리아의 유혁민 대표의 말로는 건축가들이 보면 흥분할 만한 땅이라고 했다. 미련 없이 부동산에 계약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쪽에서 갑자기 가격을 2억원 이상이나 올려버렸다. 좀 김이 빠지지만 향린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로 돈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초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땅을 팔고자 하지 않을 뿐더러 한 번씩 급하게 돈이 쓸 일이 있을 때 내놓다가 그것이 해결되면 가격을 올려버리는 식이다. 조금 저렴하게 나왔다 싶은 땅이 있어 연락을 하면 그중 태반이 이렇게 가격을 올려버리는 물건들이다. 익히 경험해 온 터라 애써 아쉬움을 달랬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향린과 인연이 있다면 적합한 땅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다.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근 4년 동안 매일 새벽에 정갈한 마음으로 발원(發願)했던 터였다. 뭔가를 그렇게 발원해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는 확신 같은 것이 생긴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기다림은 결국 응답을 받았다. 3부 능선에 위치한 평지에 가까운 땅 150평을 3억대의 가격으로 구했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땅이라 더 인연처럼 느껴졌다. 마치 아이를 가지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하다 탄생의 기쁨을 맛본 부모의 마음에 비견할 만했다. 땅이 우리 품으로 오던 날, 울컥할 정도로 감격했다. 이렇게 찾은 땅이기에 나는 이 땅이 우리의 집을 얹을 더 없이 합당한 곳이라 믿는다. 쉽게 구했더라면 이런 느낌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우리 땅도 물론 흠이 있기는 하다. 지적도상으로는 직사각형인데 일부가 깎여 있다. 일반적으로는 축대를 쌓고 땅을 최대한 찾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가 지내고 관리하기에 충분한 마당 공간이 나오고, 안전상에도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원래 가진 지형을 최대한 살리기로 한 것이다. 서로 못난 부분을 미워하기보다 가꿔가면서 조화를 이루며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 가족이 살게 될 집
자! 그럼 이제 우리가 평생 살려고 짓는 향린동산의 주택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사실 좀 자연적인 집을 원했다.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나오이건축설계사무소의노리코(Noriko Naoi) 씨가 말했던 'Rustic Modern(소박하고 시골적인 모던함)'이 내가 원하는 취향이다. 참 모순적인 취향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내 삶은 늘 이렇게 이율배반적이고 아이러니한 것들의 조화다. 나는 이상적 현실주의자며, 목표지향적이나 인간적인 부분에 더 끌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정한 산골 같으면서도 도시와 접해 있어야 한다는 땅의 조건 또한 무척 아이러니한 것이 아니던가? 내가 원했던 집도 이런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내 취향에 맞는 건축가와 시공사를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프로방스의 따뜻함'을 기초로 목재의 느낌은 살리되 프로방스의 곡선미는 배제시키고, 지붕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금속재질이어야 했다. 내 취향은 아주 뚜렷했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업체가 시공한 기존의 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원했기에 내가 많이 공부하고 시공사에 주문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실용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아내는 살기 편하고, 깔끔하고, 관리가 편한 그런 집을 원했다. 그러던 차에 유혁민 대표가 소개해준 곳이 나오이건축설계사무소이다. 당시 나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일본에서도 꽤 알아주는, 소위 '잘나가는' 설계사무소로, 건축 문외한인 내가 본 그들의 작품은 정갈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으며, 빛의 처리에 능수능란했다. 적어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다. 단지 취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그들이 설계한 기존의 주택들에서 인간적 느낌, 소박함, 세월의 흔적 같은 것들이 나무 내장재들로 표현되었으면 했다.
나오이 씨와의 첫 미팅 때, 나는 장장 4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준비했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문했다. '자연, 야외, 아웃도어, 명상, 독서, 집필, 수납, 독립적 공간'이 나의 주된 요구사항이었다. 주문을 하면서도 '너무 심하게 내 주장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일 정도였다. 함께 미팅에 참가했던 유 대표도 일단 큰 원칙만 정하고 믿고 맡겨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케이크 상자 같은 곳에 우리 집의 모형을 담아왔다. 나는 빨리 상자를 열고 싶었다.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상자를 열었을 때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썩 괜찮다'는 것이다. 그때의 느낌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간결하다. 선 하나하나의 처리가 인상적이다. 특히 우리 집 모형의 동쪽 뷰를 보면 문외한이 봐도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구조목의 배치가 산만하지 않다. 구조들이 딱 열과 호를 맞추어 정렬되면서도 공간배치가 이뤄지고 있다. 볼 곳과 가릴 곳이 확실하다. 오픈할 곳은 통으로 오픈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많은 책과 아웃도어 장비, 집안 살림, 정원 관리용품을 수납할 공간이 부족한 점은 초기 내 주문들이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이는 건축면적의 제약 때문인 것으로 이해했고, 우리가 쓰지 않는 물품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또한 독서, 집필,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상당히 좁았다. 4년 동안 이 공간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협소한 공간이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2층 본채와 테라스를 공유하면서 독자적으로 떨어진 하나의 공간을 원했지만 면적의 제한, 집은 곧 가족 간의 조화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 그나마 이 공간 앞에 제일 넓은 테라스를 마련해 준 점 등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 주방과 거실의 경우, 각 공간의 완전한 분리 대신 통합으로 갔다. 우리가 처음 주문한 것은 상호간의 공간적 분리를 통해 독자성을 보장해주되, 원목 통창을 중간에 배치하여 시각적인 연결성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오이 씨가 제안한 것은 거실과 주방이합쳐지는 것으로, 덕분에 공간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일본 건축가와의 작업은 큰 모험이다. 목조주택 문화가 우리보다 발달한 환경에서 실제 그곳에서 살고 있는 건축가의 작품이라 큰 기대가 있는 반면, 의사소통이나 결정에 걸리는 시간적 지연 같은 제약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곳의 자재실정과 국내의 그것이 다른 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 홈포인트코리아, 그리고 나오이건축설계사무소 모두 서로 대화가 통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은 건축주, 건축가, 시공사 모두의 작품이다. 어느 한 쪽의 의견이 일방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서로 경청하고 자기 색깔을 내되 함께 조화를 이룬다면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월간 <전원속의 내집>의 기사 저작권은 (주)주택문화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복사, 배포는 저작권법에 위배되오니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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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골 전원주택이야기(전원 황토 농가주택 땅 토지 부동산 )
글쓴이 : 봉여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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